투자 상식, 핀트레터

원금, 아니 휴지 찾아가세요

2023. 04. 04

지난 핀트레터에서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이 줄도산과 인수합병을 겪은 일에 대해 알아봤죠. 이번엔 크레디트스위스가 인수되는 과정에서 ‘채권 전액 상각’ 조건이 붙으며, 한순간 자산 가치가 ‘0’이 된 투자자들이 속출했어요. 오늘 핀트레터에서는 해당 채권에 대한 내용과, 이것이 불러올 문제점에는 어떤 게 있는지 알아볼게요.

신종자본증권의 등장

돈이 필요한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자금 조달방식으로는 은행 대출, 채권 발행, 유상증자가 대표적이에요. 이중 은행 대출과 채권 발행은 부채가 늘어나는 방식이에요. 이 때문에 자기자본비율 규제를 적용받는 금융권에서 활용하기엔 제약이 있어요. 유상증자는 발행 주식 수가 늘면 주가에 대체로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주주들의 불만이 터지기 쉽고요.

여기서 신종자본증권(Additional Tier 1)이 대안으로 등장해요. 위 방식들의 문제를 피해서 가기에 안성맞춤이라는 판단에서였죠. 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을 띠는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아주 길고, 만기 연장도 가능해서 채권임에도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자기자본비율 규제가 심한 은행, 증권사, 보험사에서 주로 사용하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비교적 쉽게 자금을 조달하려는 목적에서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 Editor’s comment

자기자본비율(Capital Adequacy Ratio, BIS 비율)
총자산 중에서 자기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어 기업 재무구조의 건전성을 가늠하는 지표. 은행의 위험가중 자산에 대한 자기자본의 비율 8% 이상을 권장함.

조기상환 안해? 네니오! 🙆‍🙅‍♀️

국내에선 작년 11월, 흥국생명으로 인해 다시금 신종자본증권이 주목받았어요. 당초 5억 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조기 상환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상환하는 것으로 번복한 거예요.

금융업계에서는 30년 만기일 경우, 5년째 접어드는 해에 신종자본증권 신규 발행을 통해 전액 상환하는 것이 관례였어요. 따라서 조기 상환이 법적 의무는 아니지만, 이를 유예한다는 건 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의심케 하기 충분했어요. 신인도 하락은 물론이고요.

관례를 깨는 시도 한 번만으로 흥국생명은 채권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었어요. 그 결과 당시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가치는 15%나 떨어졌고요. 일단 흥국생명이 의심받자 한화생명 등 다른 보험사들의 신종자본증권도 악영향을 받기 시작했어요. 나중에는 금융권 전체로 번지면서 한국투자증권, 하나은행, 신한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에서도 채권 발행에 어려움을 겪었죠.

조건: 채권을 전액 상각할 것

크레디트스위스는 스위스 프랑은 물론, 미국 달러, 싱가포르 달러로 발행된 13개, 총규모 173억 달러 상당의 신종자본증권을 갖고 있었어요. 크레디트스위스가 가진 총부채의 20%에 달하는 규모로, 이를 조기 상환하는 게 어려울 거라는 전망 하에 해당 신종자본증권 가치는 하락세를 걷고 있었죠.

이때 깜짝 등장한 UBS가 크레디트스위스 인수를 결정하며 스위스 중앙은행의 보증을 받게 되었어요. 그러나 이러한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이 잠자코 있던 계약 조건 하나를 발동시켰어요.

바로 ‘이례적인 정부 지원이 있을 시, 기업이 살아날 수 없다 간주하여 해당 채권을 전액 상각한다’는 계약 조건이에요. 일정 가치를 계산에서 뺀다는 ‘상각’ 앞에 ‘전액’이란 조건이 붙으면서 신종자본증권의 가치는 0이 되어버린 거예요. 어차피 계약 조건대로 이행한 셈이니 괜찮은 것 아니냐고요? 먼저 신종자본증권의 장단점을 한번 살펴볼게요.

긴 만기, 높은 금리

발행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부채로 잡히지 않으니 자본 비율 관리가 된다는 점이 좋아요. 30년 만기에 연장도 가능한 데다 조기 상환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 이처럼 만기가 매우 길고 발행자에게 유리한 조건인 만큼 금리가 높은 건 감내해야 할 몫이에요. 채권 투자자에게 이자를 많이 줘야 하죠.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자를 많이 받을 수 있으니 상환 전까지 꾸준히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채권이에요. 대신 가능성은 작지만, 위험한 조건이 붙어요. 상환 우선순위가 높지 않고, 계약 조건에 따라서는 크레디트 스위스의 사례에서 보듯 자산 가치가 아예 제로(0)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채권 상각이 난리인 이유

위 표에서 본 대로 신종자본증권은 상환 시 권리에 있어 주식보다 우선해요. 이번 사건에서는 어땠죠? 크레디트스위스 주식 22.48주를 UBS 주식 1주로 교환해주면서, 주주들은 조금이나마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어요.

우선권을 갖는 신종자본증권 투자자들은 오히려 가치가 ‘0’이 되어버린 채권, 아니 휴지 조각을 손에 쥘 뿐이었고요. 새치기당해도 화나는 마당에 상환 순서를 지키지 않았으니 신종자본증권 투자자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에요.

잠시 위기가 있었지만 멀쩡히 살아난 크레디트스위스의 재무 건전성은 상각된 채권 전액이 자본으로 편입되면서 크게 개선됐어요. 오히려 일반 채권은 크레디트스위스 부도 위험에 반비례하면서 그 가치를 회복했고요. 둘 다 같은 채권임에도 한바탕 난리가 지나간 후에 맞게 된 상황은 달라도 너무 다른 상황이에요.

도이체방크, 너마저?

스위스 같은 극단적인 사례는 사실 유럽 전체를 놓고 봐도 드물어요. 이런 계약 조건이 발동한다 해도 일부 상각에 그칠 뿐이죠. 그럼에도 이번 크레디트스위스 사건은 영국 등 다른 유로존에 속한 신종자본증권 시장에 적잖은 충격으로 작용했어요.

해당 채권으로 만든 다수의 ETF 가격이 최근 급격히 하락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결국 금융 당국 차원에서 크레디트스위스와 같은 문제는 없을 거라는 공식 발표가 나온 후에야 일부 회복할 수 있었어요.

크레디트스위스 문제가 일단락되며 다소 안정을 찾은 듯 보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하긴 일러요. UBS, 소시에테 제네랄, 바클레이스 등 다른 유럽 대형 은행들
역시 대규모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기 때문이에요.

이런 상황에 시장의 불신마저 불어닥친다면 조기 상환을 위한 자금 조달이 어려울 수 있어요. 실제로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는 실제 재무 건전성과는 무관하게 주식, 신종자본증권 등 관련 지표가 급격히 나빠졌어요.

이처럼 미국은 물론, 유럽의 은행들 역시 아주 힘든 상황에 놓여있어요. 그 결과 지난 3월 채권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의 변동성을 보였고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지표 하나하나 챙겨보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요? 이럴 땐 시장의 모든 것을 스스로 학습하고 더 나은 선택지를 찾아 나가는 인공지능 아이작에게 투자를 맡기는 것도 좋은 해법이 될 수 있어요.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 준법감시인 심사필 제2023-067호(2023.03.31 ~ 202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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