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상식, 핀트레터

행동주의 투자에 당한 기업사냥꾼

2023. 05. 23

행동주의 투자자이자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칸(Carl Icahn). 최근 자신이 해온 방식 그대로 되레 기업사냥을 당하는 일이 있었어요. 이로 인해 그의 투자회사 아이칸 엔터프라이즈(이하 “IEP”)의 주가는 40% 넘게 떨어졌죠.

100억 달러 가까운 돈이 증발하는 데 걸린 기간은 고작 10일에 불과했어요. 블룸버그에 따르면 칼 아이칸의 재산은 당시 248억 달러에서 136억 달러로 줄었고, 글로벌 재산 순위도 58위에서 134위로 떨어졌어요.

👉 Editor’s comment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
주주들이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

100억 달러를 움직인 힘

IEP를 공격해 주가를 반토막에 이르게 만든 주인공. 바로 힌덴버그 리서치(Hindenburg Research)였어요. 힌덴버그 리서치는 ‘주주행동주의 공매도’를 하는 회사예요.

기업가치가 과대평가 됐거나, 회계 부정, 혹은 사기 정황이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공매도 포지션을 취한 후, 부정적 보고서를 공개하여 투자자들의 매도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떨어뜨려요. 주가가 올라야 돈을 버는 일반 투자자와는 반대 방향의 전략을 사용하기에 ‘역투자가(Contrarian Investor)’로도 불려요.

IEP의 문제점

2023년 5월, 힌덴버그 리서치는 IEP의 기업가치가 75% 이상 부풀려져 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그 주장의 근거는 크게 3가지였어요.

1. IEP는 순자산가치 대비 218%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동종업계 대비 크게 높은 수치다.
2. IEP는 자신들이 보유한 자산 중, 유동성 적은 자산을 부풀려 평가했다.
3. IEP의 2022년 말 실적 발표 이후, 연초 대비 추가 손실을 보았다.

힌덴버그 리서치의 주장에 따르면, IEP와 같은 폐쇄형 지주회사의 경우 일반적으로 순자산가치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가격으로 거래가 이뤄져요. 유명투자자가 운영하는 폐쇄형 지주회사의 예로 댄 롭의 ‘서드 포인트(Third Point)’, 빌 애크먼의 ‘퍼싱 스퀘어(Pershing Square)’를 언급했는데요. 각 회사는 순자산가치의 86%, 65% 정도 가격에 거래되고 있어요.

순자산가치의 218% 가격에 거래되는 IEP와는 큰 차이가 있는 거죠. 이 외에도 블룸버그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526개의 모든 미국 기반 폐쇄형 펀드와 비교해서도 IEP는 순자산가치 대비 높은 비율에 거래되고 있어요.

IEP의 뻥튀기

IEP가 기업가치를 부풀렸다는 주장은 무슨 말일까요? 한가지 예를 들어 볼게요. IEP는 육류 포장 회사인 Viskase 지분의 90%를 소유하고 있는데, 시장 가치 8900만 달러에 불과한 기업의 가치를 2억 4300만 달러로 평가했어요. IEP가 보유 기업의 가치를 공개 시장 가격보다 2배 이상 부풀려 표시했다는 것이 힌덴버그 리서치의 주장이에요.

투자마저 실패?

2022년 연말, IEP가 공시자료를 통해 발표한 그들의 순자산가치는 56억 달러였어요. 하지만 힌덴버그 리서치가 추정하는 그들의 순자산가치는 약 44억 달러 수준이에요.
IEP가 그들의 순자산가치를 부풀렸다고 주장한 거예요.

설상가상으로 2023년엔 연초 대비 약 4억 7100만 달러의 투자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 중이에요. 동일 기간 S&P500은 9.2% 올랐는데도 말이죠.

IEP의 입장

힌덴버그 리서치는 해당 보고서에서 IEP의 자금 조달 방식, 배당 지급 방식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어요. 이후 칼 아이칸은 보고서 내용에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아직 명확한 반박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상태예요.

이에 ‘월가 저승사자’가 나섰어요. 주가조작을 비롯한 화이트칼라 범죄 수사를 지휘하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 뉴욕 남부연방지검이 해당 사항을 좀 더 조사하기 위해 5월 3일에 자산가치, 기업지배구조 등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한 거죠.

부호 순위도 바꾸는 영향력

힌덴버그 리서치의 보고서 발표 이후 주가가 폭락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에요. 2023년 1월에는 인도 시가총액 2위 규모 대기업 아다니(Adani) 그룹의 주가 조작, 회계 사기 등을 폭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어요.

인도 항공 여객의 23%를 차지하고 그룹 공항만 7개를 소유한 인도 최대 물류 및 에너지 기업임에도 불구, 보고서 발표 후 6영업일 만에, 2000억 달러 이상의 시가총액이 증발했어요. 삼성전자 시총이 3200억 달러(4월 말 기준)임을 감안하면 파급력이 굉장히 컸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

경찰도 움직인 파급력

보고서는 비단 기업과 경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에요. 2020년 힌덴버그 리서치는 미국 수소 트럭 회사인 니콜라(Nikola)에 공매도 포지션을 취한 뒤 니콜라가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어요. 이후 내용은 사실로 밝혀지면서 니콜라 창업자 트레버 밀턴은 사기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어요.

행동주의 투자가 늘어나며 그 영향력은 더 커지고 있어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본력이 취약한 기업이 주 타깃이었으나, 2010년대 이후 대기업까지 타깃 삼으면서 행동주의 투자, 행동주의 공매도의 영향력은 더 확대되는 추세예요. 투자 전략 다양화와 힘의 이동이 결국 균형점을 찾아가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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